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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도종사님 말씀

스승의 날에 - 도종사님 (2001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말씀: 국선도 도종사 도운 허경무

                                         일시: 2001년 5월 15일 오후1시

                                       장소: 국선도본원 4층

                                       

  여러분, 참으로 감사합니다. 

  내가 오늘, 아침부터 각 지방에서 한 10여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 여러 사범님들로부터 이런 환대를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국선도가 앞으로 잘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바쁜 일들이 많을 줄 아는데, 이렇게 오셔서 여러모로 미흡하고 부족한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을 표해 주시니 가슴이 벅차옵니다.

  여러분들은 제자의 입장에서 저를 찾아왔지만,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의 도장에서는 다 스승이고, 지도자이십니다. 오늘, 스승의 날을 맞아 제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스승을 더 잘 받들어야 되고, 또 스승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제자를 더 잘 육성해야 하는가를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4대 성인이라고 우러르는 분들을 봅시다.  우선 공자님을 들 수 있지요.  그러나 공자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몇 말씀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맹자, 열자, 순자라는 훌륭한 제자들이 닦은 학문에 의해서 또 수련에 의해서 공자님이 후세 사람들의 표상이 될 수 있도록 세워진 것이지요. 물론 공자님에게 미흡한 구석이 있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훌륭한 제자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공자님으로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란 말이지요.  또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스스로는 아주 짧은 시간에 몇 말씀 하시지 않았지만 바울과 베드로라는 석학이 있었고, 이런 훌륭한 신앙의 화신들이 있었기 때문에 후세에 전 세계인의 3분의 1이 흠모하고 따르는 성인으로 우리한테 전해져 온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부처님께서 입적하신 후 평소의 가르침을 모두 다 기억하여 경을 펴낸 아난다에 의해 그 가르침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면서 또 우리들에게는 위대한 스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소피 철학자들에 의해서, 사회적으로, 세상에 맞게, 또 시대에 맞는 스승으로 가꾸어져 온 것입니다.  오늘 스승의날을 맞아서, 제가 좀 역량이 있었더라면 저희 열조님들 스승님들을 더 빛낼 수가 있었을 텐데 미흡하여 이 모양으로 이러고 있다는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어느 한 마을에 덕망이 높아 칭송이 자자한 한 스승과 또 주색잡기에 능하고 괴팍하여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한 스승이 있었습니다. 덕망이 높은 스승 밑에는 자연 따르는 제자들이 아주 많았고, 괴팍한 스승 밑에는 따르는 제자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어느날 두 스승이 오랫만에 만나 담소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제자들도 한 방 가득히 앉아서 오랫만에 만난 스승님들의 정담이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남이 끝나고 돌아가려고 보니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가 많고 덕망 있는 스승은 제자들이 서로 우산을 받쳐드려 가마까지 모시는데, 이 괴팍한 스승은 제자도 몇 명이 안 되는데, 나와 보니까 우산도 다 찢어진 우산 하나 덜렁 있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제자 하나가 나서더니 자기 두루마기를 떡 벗어서 스승님이 가실 길에 쭉 깔고서는 스승을 가마까지 모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 했다는 거예요.  저 괴팍하고 덕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스승 밑에 저런 훌륭한 제자가 있는 걸 보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훌륭한 면이 있는 분인가 보다, 그러고는 그 일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마을 전체에 소문이 쫙 퍼진 것입니다. 하루는 괴팍한 스승이 그때 그 제자를 불러서는 크게 호통을 쳤습니다.

  “너 이놈, 왜 그런 짓을 해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느냐! 누가 덜 더러 그 따위 짓을 하라고 했느냐! 사람들이 네가 한 일을 두고 나를 훌륭한 스승이라고 추켜세운다. 이제 가식적으로 훌륭한 스승 노릇을 해야 되니 큰일이 아니겠느냐.  네가 저지른 일이니까 네가 책임져라!”  하니까 그 제자가 말하기를 “스승님, 그게 아닙니다. 저는 단지 그날 스승님이 신을 신으시려고 내려서시는데 보니, 신발에 구멍이 크게 나 있었습니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지, 그래서 아이구, 스승님 발이 젖겠다 싶어 얼른 제 옷을 깔아드린 것 뿐입니다.”  “그래, 네가 나를 존중해서 그러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일로 인해 나는 훌륭한 스승이 되었고, 너 또한 훌륭한 제자가 되었다.  세상 이목이 그러니까 그것을 보완할 만큼 너는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를 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와 내가 세상사람을 속인 게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그 말을 듣고 어리석은 제자는 그 날로부터 열심히 수련을 해서 그 문파를 빛냈다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내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국선도는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어깨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나는 아주 부족한 사람입니다.  신발에 구멍이 난 것을 보고 두루마기를 깐 그 어리석은 제자처럼 저의 이 부족한 구석을 여러분이 메꾸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중국에 무술을 하는 사람들을 봐도 가장 공이 약한 사람이 상대방 적을 향해서 싸우고 공이 높은 사람일수록 도를 행하는 법입니다. 그 단체, 그 문파가 살려면 이런 생각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이 무엇 큰 차이가 나겠습니까?  어떻게 받들어 모시느냐에 따라서 지휘계통이 설 수가 있고 그 단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커다란 고목이 외풍에 의해서 쓰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부에서 좀먹기 때문에 쓰러지는 것이란 말입니다.  신격화시킨다든지 어떤 현실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묘사하고 표현하는 것은 그 사람을 받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단체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정직함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세상사람들을 속이고 혹세무민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있는 그대로 우리의 참 모습을 가꾸어 나가서 정말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단체로 이끌어 나가야 됩니다.  이런 면에서 이런 부족한 나를 여러분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그 뜻을 표해주는 것을 볼 때 우리 국선도의 앞날은 굉장히 밝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부모는 우리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스승이 하는 일은 그 성장된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 이것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일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선생이 많기 때문에 스승과 선생의 구분이 안 되는 것이란 말이지요. 그리고 왜 君師父一體라고 해서 스승을 임금과 부모 같은 반열에 놓았느냐 하면 부모는 우리 육신을 키워주지만 스승은 태어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정명을 완수할수 있도록 영성의 개발을 위해서 교육을 시키고 이끌어 주기 때문에 옛부터 스승의 위치가 그렇게 컸던 것입니다.  만약 선비가 밥을 먹고 있을 때 임금이 부르면 밥을 다 먹고 가고, 아버지가 부르면 씹지 않고 얼른 삼키고 대답을 하고 가고, 스승이 부르면 밥을 토하고 대답을 하고 달려가야 된다고 한 것도 스승에 대한 존경, 위치가 제일 높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여러분이 이 세상에 먼저 태어나서 먼저 배웠기 때문에 그것을 전해주는 선생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정말로 여러분과 인연이 된 여러분들의 모든 제자들의 영적인 발전을 위해서 그 사람을 이끌어 주는 참 스승이 됐는가를 우리가 또 한 번 반성해 보는 날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항시 우리 마음 깊은 곳을 볼 수가 있어야 됩니다.  마음 깊은 곳에 우리가 ‘참 나’라고 하는 아주 순수한 생명체인 진아인 나의 모습을 보고 이 빛이 우리 제자들한테 전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기술이라든가 학설은 생명이 짧은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항시 마음을 비우고 여기저기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서 하늘의 뜻이 전해져 나갈 수 있도록, 이런 마음자세를 가지고 우리 제자를 대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건강을 돌볼 뿐더러 그 사람의 마음상태,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하고 연결되어 있는 한 분 한 분을 하루에 한 번 두 번씩 계속 명상 속에 떠올리면서 정말 하늘로부터의 참 빛으로, 생명이요 사랑의 빛으로 가득해질 수 있도록, 그로 인해서 아주 충만된 건강과 기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늘의 뜻이 그 주위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도록 마음을 써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그저 의미 없이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정한 마음으로, 악수를 하더라도 그렇고 인사를 하더라도 그렇고, 또 다른 나를 대하듯이 이렇게 제자들을 대하게 되면 우리는 부족하고 역량이 약하지만 우리의 제자들로 인해서 이 세상이 환하게 밝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먼저도 얘기한 바가 있지만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훌륭한 지도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사람입니다.  역량이 있어서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지도자도 훌륭한 지도자라고 볼 수 있지만, 그보다도 더 훌륭한 지도자는 많은 지도자를 배출하는 이 분이 가장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가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 혼자만은 한계가 있지만 내가 배출하는 수많은 지도자들 중에서는 나의 역량을 훨씬 뛰어넘는 훌륭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많은 지도자를 배출하는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우리의 도맥이나 이런 데 있어서도 아주 훌륭한 역량을 갖춘 지도자가 많이 있었지만 후학을 위해서 훌륭한 후배를 낸 지도자라든지 많은 제자를 길러낸 스승을 후학들은 기리고 그분들을 가장 훌륭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는 스스로를 밝혀야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속고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를 환히 밝혀서 우리가 단전이라고 표현하는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정말 영광스럽게 빛나는 우리 본체를 보고 세포 하나하나, 전신까지 기쁨과 생명력이 충만하게 하고, 이로 인해서 이 기쁨과 빛이 주위 사람, 우리 제자들한테 전해져 나가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스승으로서 해야 될 의무입니다. 여러분들이 손 하나 가져갈 때, 웃음 하나 가져갈 때, 옷깃 하나 스칠 때 정말 그 사람의 영역에, 그 사람의 파장 안에서 함께 하면서 ‘하나’라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게 된다면 우리 국선도는 하나, ‘一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라는 것은 사람의 용어가 아닙니다.  신의 용어입니다.  사람은 하나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 하나가 될 수 있느냐 하면 우리 육신적인 영역을 떠나서, 영적인 나와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하나’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정말 평안하고 행복하며 기쁨이 흘러넘쳐 이것이 여러분 제자들에게, 또 사회로까지 넓게 퍼져 나가기를 바랍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오늘 이 자리가 지도자인 우리로부터 세상이 조금이라도 밝아지고 나아지기를 발심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